모든 예배 영상은 누구나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바로 보기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예배당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골로새서 3:17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예배 영상이 시작됩니다.

2026년 7월 17일 금요예배

본문: 잠언 19장 17절

제목: 여호와께 꾸이는 것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말씀 요약:
‘꾸이는 것’은 빌려 드린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베푼 것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그것을 자기 빚으로 여기시고 온전히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채무자의 자리에 두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께 빌려 드릴 수 있습니까?

다윗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라 고백했습니다(대상 29:14). 우리 손에 있는 것은 원래 우리 것이 아니라 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 것이라 움켜쥘 것이 없는 사람, 곧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하나님께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긍휼은 부요한 자가 가난한 자를 내려다보며 하는 일이 아니라, 받은 줄 아는 가난한 자가 또 다른 가난한 자 곁에 서는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가난한데 손은 움켜쥐고 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넉넉히 꾸어주라’ 명하셨고(신 15:7-8),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을 책망하십니다(약 2:15-16; 요일 3:17-18). 손을 움켜쥐는 가장 무서운 방법은 경건을 핑계 삼는 것입니다 — ‘고르반,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 한마디로 부모 봉양을 피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막 7:11-13). ‘나는 심령이 가난하니까 됐다’, ‘나는 하나님께 드리고 있으니까 됐다’ —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르반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사람을 대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하는 것입니까(잠 14:31)?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5:40). 그 작은 자 곁에,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이 서 계십니다(고후 8:9). 우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은 자들이며(딛 3:5),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마 18:33) 하신 그 긍휼을 먼저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새겨진 자는 그 이름의 주인이신 예수님처럼 손을 폅니다.

주요 말씀

  • 잠언 19:17
  • 역대상 29:14
  • 신명기 15:7-8
  • 야고보서 2:15-16
  • 요한일서 3:17-18
  • 마가복음 7:11-13
  • 잠언 14:31
  • 마태복음 25:35-36, 40
  • 고린도후서 8:9
  • 디도서 3:5
  • 마태복음 18:33
  • 마태복음 5:7

태그: 여호와께꾸이는것, 긍휼, 가난한자, 손을펴라, 고르반, 지극히작은자, 예수이름, 잠언19장, 금요예배